침묵하는 식재료가 있습니다. 강한 양념으로 치장하지도 않고, 첫 입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재료는 오랜 시간 식탁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유행처럼 등장했다 스러지는 식재료들의 행렬 속에서, 곤드레는 늘 밥 위에,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이것은 곤드레를 특별한 슈퍼푸드로 추켜세우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왜 이 수수한 산나물이 세대를 넘어 우리 밥상에 남아 있는지, 그 존재의 이유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기록입니다.

1. 산이 기억하는 이름
곤드레. 고려엉겅퀴라는 다소 딱딱한 학명보다, 이 부드러운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식물입니다.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산나물로, 강원도 산간 지대의 서늘한 공기와 척박한 토양 사이에서 묵묵히 자라납니다.
봄이 오면 산비탈 어딘가에서 고개를 내미는 어린잎. 그것이 곤드레의 시작입니다. 잎은 크고 넓으며, 줄기에는 질긴 섬유질이 가득합니다. 생으로 베어 물기에는 너무 거칠어서,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만 비로소 음식이 됩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재배를 염두에 두고 개량된 작물이 아닙니다. 산이 내어준 것을 사람이 받아들인, 자연과 식문화가 만나는 접점에 가깝습니다. 영양 성분을 따지자면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칼륨과 칼슘이 소량 존재합니다. 지방은 거의 없고, 향은 은은합니다.
곤드레가 식탁에 오르는 이유는 '몸에 좋다'는 효능 때문이 아닙니다. 자주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다는, 그 소박한 매력 때문입니다.
2. 척박함이 키운 생명력
곤드레는 비옥한 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척박한 산비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야생의 영역에서 더 잘 자랍니다. 관리가 필요 없고, 계절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스스로 생을 이어갑니다.
그래서 곤드레는 대규모 농경지의 작물이 아니라, 산촌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든 식재료가 되었습니다. 귀해서 찾은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었기에 먹게 된 음식.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남은 식물이 사람의 밥상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이 곤드레가 가진 첫 번째 미덕입니다. 애쓰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것.

3. 시간이 빚은 식감
곤드레를 요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생곤드레는 섬유질이 질기고 수분이 많아, 그대로 불 위에 올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데쳐 말리고, 다시 불려 쓰는 방식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이것은 풍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리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식감을 순화하고, 저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실용적 선택입니다. 말리는 과정을 거치면 질긴 조직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계절과 무관하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재료가 됩니다.
곤드레는 '바로 먹는 채소'가 아닙니다. 기다림 끝에 완성되는, 느린 음식입니다.
4. 밥과 곤드레 사이
곤드레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밥 위에 놓일 때입니다. 반찬으로 곁들여지기보다, 밥과 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곤드레의 맛과 향이 비교적 절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곡물의 풍미를 덮지 않고, 밥알 사이로 스며들며 은은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기름 없이도 성립하고, 강한 양념 없이도 조화를 이룹니다. 곤드레가 밥과 잘 어울리는 이유는, 자기주장을 앞세우지 않는 재료의 품성에 있습니다.
한 입 떠서 입안에 넣으면, 밥의 온기와 곤드레의 섬유질이 함께 씹힙니다. 그 순간, 음식은 단순한 영양 섭취를 넘어 하나의 경험이 됩니다.
5. 담백함이라는 미학
곤드레를 묘사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담백하다'입니다. 이 담백함은 결코 무미건조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곤드레에는 미세한 쌉싸름함과 풀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강도는 낮고, 지속성은 짧습니다. 입안을 지배하는 대신, 다른 재료와 함께 흐르며 조화를 만듭니다.
섬유질이 주는 씹는 감각, 기름기 없이도 유지되는 질감. 이것이 곤드레를 가볍지만 허전하지 않은 음식으로 만듭니다. 담백함은 때로 가장 절제된 형태의 풍미입니다.

6. 느림의 가치를 되묻는 시간
오늘날 곤드레는 더 이상 강원도 산골의 향토 음식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도시의 식탁에서도, 간결한 한 그릇 음식으로 다시 선택받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건강식 트렌드 때문만은 아닙니다. 빠르고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질수록, 천천히 씹어야 하는 음식의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곤드레는 먹는 속도를 늦추게 만드는 재료입니다. 조리 과정에서도, 섭취 과정에서도 서두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식사의 시간, 음식과 마주하는 태도를 다시 일깨우는 매개일지도 모릅니다.
마치며
곤드레는 특별해서 살아남은 식재료가 아닙니다. 강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며, 늘 비슷한 자리에 조용히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곤드레는 여전히 밥 위에 올라옵니다.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고, 식탁의 균형을 지키는 조연으로서. 곤드레를 먹는다는 것은 새로운 미식을 발견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래된 식생활의 방식을, 천천히 씹는 시간의 의미를 다시 꺼내는 선택에 가깝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한 줌의 나물이 밥 위에 놓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음식의 본질과 마주합니다. 화려함 대신 소박함을, 빠름 대신 느림을, 자극 대신 침묵을.
곤드레는 그렇게, 말없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먹고 있는가, 라고.
'식품과 식재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복분자의 모든 것, 우리는 어디까지 알고 먹고 있을까 (1) | 2026.01.17 |
|---|---|
| 푸룬을 변비 과일로만 알면 놓치게 되는 것들 (2) | 2025.12.30 |
| 과메기, 겨울 바람이 만든 반건조의 맛 — 제대로 알고 먹는 법 (0) | 2025.12.24 |
| 여주를 먹는 사람과, 끝까지 못 먹는 사람의 차이 — 쓴맛보다 중요한 선택 기준 (0) | 2025.12.22 |
| 돼지감자가 꾸준히 찾는 식품이 된 이유 — 이눌린 한 가지로 설명되지 않는다 (1) | 2025.12.06 |